임경선 사진

On the Untraveled Travelogue by Kyung-sun Lim
임경선의 여행하지 않은 여행기에 관하여

칼럼니스트로 글을 알리기 시작해 장르를 종횡하며 매일 문장을 써 내려가는 작가. 매번 조금 다른 표정으로 발간되는 그녀의 책은 평행이론처럼 작고도 사소한 우주가 변주되는 듯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미 여행을 매듭짓는 임경선 작가를 만났다.

거의 매일 글을 쓰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보이는 거죠. 제 SNS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직업처럼 아침에 일정 시간, 오후에 일정 시간을 정해서 매일 쓰는 건 아니에요. 책 집필을 본격적으로 할 때는 당연히 그렇게 하죠. 하루에 최소 서너 시간은 매일 글을 써요. 책과 관련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면 집중해서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아이를 등원·등교시켰는데요, 아이와 헤어지면 바로 업무 모드로 들어가서 아침 8~9시에 문을 여는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제는 약간 달라져서, 저 편할 때 서너 시간 정도 집중해서 글을 써요. 작가라는 업이 딱 잘라서 출퇴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다 비슷하죠, 저술업자들은.

단행본은 거의 매년 나오는 것 같은데.
제가 전업 작가로 활동한지 20년 됐는데, 개정판 포함해서 24권을 냈고, 개정판을 제외하면 한 22권 되니까 뭐, 얼추 매년 한 권씩 냈다고 할 수는 있죠. 사실 어떤 해는 2권 내고, 임신한 해에는 0.5권을 썼지만요.

한 신문사의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소설 한 권, 에세이 한 권 이렇게 번갈아 가며 출간했더라고요.
처음에는 에세이 위주로 쓰다가, 소설을 시도해봤고, 소설도 쓸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소설과 에세이를 번갈아 가며 쓰는 것 같아요. 좌뇌, 우뇌 번갈아 사용한달까요. 소설의 경우도 단편집을 내고 나면, 다음에는 장편을 쓰고.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포맷을 계속 바꾸는 게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장편만 계속 쓰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힘든 일인데.
〈조선일보〉 인터뷰. 2023년 5월 3일, ‘19년간 매년 1권… 다섯번 암 재발에도 펜 안 놨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유사한 작업 방식이라고 말했는데요.
네, 일부러 따라 한 건 당연히 아니고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40년 넘게 저술을 업으로 해왔으니까, 그가 루틴으로 삼는 몇 가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닐 거예요.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재미있게 읽고 좋아한다는 것뿐이지, 그 작가의 다른 면까지 좋아하고 따라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어쨌든 제가 20년 넘게 알량하게 글로 먹고 살다 보니까 ‘아, 저렇게 한 이유가 다 있구나’라고 알게 되는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때 담배 피우면서 밤을 새는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작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30대 초반에 담배를 끊어요. 완전히 체질을 바꿔서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머리 안 쓰는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나머지 시간은 결국 오전 작업을 위해 할애하는 거죠. 달리기도 꾸준히 하고요. 얘깃거리를 만들거나 멋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쓰는 업을 지속하려면 꼭 필요한 거라서. 그게 시행착오를 거쳐 걸러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죠.

작가님도 달리기를 하시잖아요. 체력을 위해서 선택한 건가요?

누적해서 1,000킬로미터 이상은 뛰었지만, 그걸 두고 ‘달리기를 한다’고 하기는 좀 그래요. 전 대회도 안 나가 봤고요. 코로나 때 우발적으로 시작했는데요, 달리기를 그나마 꾸준히 하는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기 위해서예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말랑해지잖아요. 낭만적인 상태라고 해야 되나. 약간은 감상적인 상태여야 글쓰는 데 도움 이 되는데, 달리면서 음악을 듣는 게 가장 기분 좋거든요. 특히 밤에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인기척 없는 깜깜한 곳을 달릴 때면, 몸에 그 음악이 깊숙이 스며들어요. 음악 듣는 게 달리기의 가장 큰 효용이고, 그 다음은 물리적으로 뇌에 산소를 공급해 혈액순환이 되게 하는거죠. 예전엔 저술업자들이 산책하면 생각이 정리된다고들 했는데, 그게 다 뇌에 산소가 공급이 됐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산책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요. 산책은 몇 시간씩 필요 한데,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기엔 아깝고, 운동 효과도 2시간 혹은 만 보 걷는 것보다 10분 빨리 달리는 게 훨씬 높아요.

글쓰는 사람이라면 물론 욕심이 나는 작업이지만, 에세이를 쓰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는 경로는 신인문학상이나 신춘문예 등의 등단 시스템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봉쇄돼 있어요. 제가 처음 소설을 쓸 때만 해도 특히 그랬죠. 신문 기자나 매체 편집장이 소설을 쓰는 경우는 더러 있었는데, 저는 에세이와 방송 출연 인지도의 도움으로 첫 소설을 냈어요. 학고재 출판사의 젊은 여성 편집자가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어떤 날 그녀들이〉(9편의 단편이 실린 연애 소설집. 2011년 출간)라는 소설집을 내게 됐고, 공교롭게도 그게 베스트셀러가 된 거예요. 5만 부 넘게 팔렸는데, 첫 책이 그렇게 팔리기 힘들거든요. 진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기존에 없던 종류의 소설이라서 그런 부분에서 수요가 있지 않았나 해요. 시장 반응이 좋아서 다음 책을 낼 수 있었고요. 첫 소설이 안 좋았으면 금세 사라졌겠죠. 그래서 항상 첫 기회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SNS에도 글을 쓰시잖아요. 그런 활동이 글 쓰는 작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서로 충돌하냐고요? 전혀요. SNS에서 쓰는 글은 뇌에서 나오지 않는 글이에요. 순간 순간의 투덜거림 같은 거죠. 미리 써 놓고 올리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런 것 치고는 정돈된 편인데, 그건 제가 칼럼을 꽤 오래 써서 그래요. 거의 몇 천 편을 써서 1,000자, 2,000자짜리 토막글 은 기승전결을 짜는 게 몸에 딱 배어 있어요. (SNS에는) 내키는 대로 확 쓰고 대신 나중에 계속 고치죠. 게시물을 올리고 나서 일주일 후에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고쳐요. 심지어 문단 나누기가 조금 균형이 안 맞는다거나, 이어지는 사진들이 너무 안 어울린다 싶은 것도 수정하죠. 한마디로 저에겐 취미생활 같은 거예요.

퇴고를 계속하는 건가요?
그렇죠. 일단 처음에 거칠게 쓰니까. 눈에 띌 때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고치고. 그런 것에 대해 스스럼이 없어요. SNS에 올리는 글이 부담이나 의무가 되면 안 되죠. SNS는 즐기면서 해야지, 남들 하니까 나도 뭔가 해야 되겠다 하면 망하는 것 같아요. 내가 부자연스러우면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경계는 뭐냐, 내 글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난 알 바 아니다 라는 태도. 댓글에서 악플이 달리든 말든 내버려둬요. 차단 같은 것도 안 하고요.
번역본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나온 게 두 권인가요?
일본어판 세 권이 나왔어요. 제가 직접 뚫은 거예요. 해외 판권 수출은 진짜 쉽지 않아요. 일본 시장은 의지를 갖고 하고, 나머지 국가는 에이전시에 맡겨요. 일본 시장은 제가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에서 살기도 했고, 또 가깝잖아요. 미국 출판 시장에서 외국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고작 3퍼센트예요. 그 안에서 전 세계 작가가 경쟁하는 거잖아요. 그나마 일본 시장은 문화권이 비슷하고, 번역도 좀 더 매끄럽게 할 수 있으니 관심을 갖고 있죠. 현지 편집자하고도 직접 소통하면서 일해요.

글을 쓸 때 일본어권 독자를 염두에 두고 문체나 문장 구조, 뉘앙스 등을 고려하기도 하나요?
그건 불가능해요. 일본인 독자뿐 아니라 한국인 독자도 마찬가지로 전혀 고려 안 해요. 글을 쓸 때 독자를 고려하는 순간 망하는 거예요. 실용서나 인문서라면 경우에 따라 타깃 독자를 상정하고 써야 되겠지만, 에세이나 산문,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은 개인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게 다예요. 그게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읽히느냐는 그 다음 문제죠. 항상 하는 얘기인데, 독자들은 고마운 존재지만 책이 쓰여지고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그들의 자리는 없어요. 독자들의 기대를 고려하면서 글을 쓰면 작가 본인도 재미없을 걸요. 독자들이 나의 어떤 점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걸 계속 배반을 해야 돼요. 저자가 독자한테 친절하면 안 돼요. 그건 전혀 독자를 위한 게 아니에요.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친절해도 되지만 그 전에는 오로지 작가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죠.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라고 알고 있는데. 
일본에서 고2 때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어요. 청춘의 사랑과 상실에 관한 내용이라 아무래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죠. 좀 야하기도 하고, 술술 읽히기도 하고. 정작 작가는 그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 못 해서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제가 항상 얘기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을 고를 수가 없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책이 자기 대표작처럼 돼 버려서 기분이 좀 착잡했을 거예요. *<태도에 관하여〉가 저한테는 그렇죠.
2015년 봄 첫 출간된 이래 22만 부가 판매된 스테디셀러. 지난 해 10월 20만 부 판매를 기념해 전면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친 완결판이 나왔다.
너무 많이 팔려서 당황스러운가요?
너무 모범생 같은 책이라서요.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거예요.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대신 계속 고쳐야죠.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정말 많이 빼고, 고치고, 다시 썼어요. 제 마음에 딱 들어야 되니까. 그래야 스스로 조금이라도 떳떳해지기도 하고. 제가 생각해도 ‘아, 이건 정말 잘 썼네, 괜찮네.’ 하는 것과 ‘아, 이건 좀 날림으로 썼네.’ 하는 책이 있어요. 자식이라고 해서 똑같이 사랑하는 건 아니거든요.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어요. 인간이니까.

개정판을 낼 때 전에 썼던 걸 다시 고치는 건가요? 굉장히 하기 싫은 일일 것 같은데.

가끔 하기 싫은 것도 해야죠. 제 입장에선 오랜 숙제를 해버린 거예요. 100퍼센트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 꾸준히 팔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거든요. 지금과 다른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읽고 누군가 지금의 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현재 입장에서 과거를 볼 때 무엇이 바뀌어서 그런 걸까요? 그러니까 30대에 쓴 인물을 작가가 40대에 고치는 것과 50대에 고치는 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의 문제라기보다 너무 일방적인 관점에서 생각했구나 싶은 것들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어릴 때 더 훈계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이가 들면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 혹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하고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젊을 때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게 보이면 스스로 너무 민망한 거죠. 물론 그 때는 그게 진심이었겠지만, 다른 생각의 여지가 생기니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르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행기를 쓸 때 현장에서 집필을 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여행지에서 메모한 것을 보면서 이것저것 덧붙여 이야기를 만드는지 궁금해요.
⟨임경선의 도쿄〉라는 책은 독립 출판물로 딱 2,000부만 찍었어요. 실제로 제가 몇 십 년간 일본을 다녀보고 쓴 책이에요. 그야말로 제가 좋아하는 장소만 넣고, 중간에 에세이 몇 편 끼우고, 일본 전국 온천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데만 소개한. 제가 큐레이션한 도쿄 가이드북이죠. 직접 출판사 등록하고 한정판 마케팅으로 낸 책이기 때문에 여행서 1위를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더 찍으라고 해도 딱 멈췄어요. 제가 또 ‘가오’를 중시하는 사람이라서. (웃음) 아무튼 그 책은 현장에 직접 가서 몇 주씩 답사 다니면서 썼어요.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와 **〈다정한 구원〉의 경우에는 제가 강연에서도 종종 얘기하면 사람들이 기함하는데, 다 써놓고 가요.
* 교토를 여행하며 느낀 이 도시 특유의 정서에 관해 쓴, 두 번째 여행 에세이. 2016년 출간.
**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년의 기억을 찾아 딸과 함께 다시 찾은 리스본 여행기. 2019년 출간.
다 써놓고 가셨다고요?
네, 다 써놓고 가요. 일단 영어나 일본어로 된 자료를 전부 구입해요. 여행지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중 저에게 흥미로운 내용만 추린 다음 구성을 하고 동선도 짜죠. 방문할 장소에 대한 사전 지식도 미리 정리해 놓고, 충분히 숙고하고 소화까지 해서 이미 다녀온 사람 같은 상태가 된 뒤에 떠나요.
제가 보기에 최악의 여행 에세이 쓰는 법은 일단 대충 가서 여기저기 다닌 다음, 그날 저녁 숙소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적고, 그걸 하나로 묶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소재를 인위적으로 찾게 돼요. 낯설고 이국적인 장소에 가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결국 나열에 불과한 글이 되고, 깊이도 없죠. 그만큼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책을 여러 권 써봤으니까 아무래도 이야기의 구조를 생각하게 되죠. 그에 맞게 일정을 짜고, 모든 자료를 숙독하고 시뮬레이션해보면서 A4 용지 100페이지를 어떤 식으로 채워야 지루하지 않을지 어느 정도 머릿속에 채운 뒤 가야 해요. 여행지에서는 최대한 편안한 상태에서 순간의 생각과 감정만 떠올릴 수 있게끔. 그래야 그날 저녁 내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대한 이야기를 쓸 여유가 생기는 거죠. 현지에서 그런 내용을 보완 하고, 돌아와서 최적화된 책의 형태로 내놓는 거예요.
여행 에세이라는 건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글이잖아요. 우리가 피렌체의 두오모에 로망을 갖고 있는 건 그에 관한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죠. 독자에게 그런 걸 줘야 해요. 단순한 정보 나열과 얄팍한 감상 말고요. 너무 안일하게 여행지에 기대면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행 에세이가 만만한 장르가 아니에요, 진짜로.

그럼 다 써 놓고 갔다는 건 떠나기 전에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정리해놨다는 걸까요?
실제로 A4용지 100페이지에 써 놓고 갔어요. Day 1, Day 2 하는 식으로 동선에 따라서. 심지어 그날 어디를 가서 제가 느낄 감정도 써 놨어요. 물론 그대로 안 가는 경우도 많죠.

그럼 〈다정한 구원〉 같은 경우는 *소진화 씨에게는…
미리 연락했죠. “아저씨, 저 가요.” 하고. 물론, 현지에서 아저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는 몰랐고, 그렇게 듣게 된 얘기가 저한테는 진짜 끝내줬어요. 그 얘기도 다 책에 썼어요.
리스본에 살던 시절 아버지와 가깝게 지낸 지인으로, 30 여 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가 〈다정한 구원〉에 실려 있다.

교토는 과거형으로 많이 쓰셨고, 리스본은 현재형으로 쓰셨어요.
리스본은 저와 같이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감정적으로 더 몰입이 될 거라 생각했고, 교토는 책의 제목처럼 다녀온 뒤 내가 알게 된 그 도시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톤으로 썼죠. 〈다정한 구원〉에선 굉장히 감정적인 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쓰는 게 상당히 힘들거든요. 그래서 쉽게 못 쓰고, 그래서 매력이 있어요.

호텔이라는 공간으로 소설도 쓰셨어요. 그 책에 나오는 것처럼 호텔에 진심이시죠?
호텔에 관한 에세이를 쓰려다가 그건 너무 노골적인 글이 되겠다 싶었어요. 잡지에 한 편씩 연재하기엔 재미있지만, 한 권의 책으로 읽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싶은 주제가 있거든요. 그래서 연작 소설을 쓴 거죠. 호텔은 원래의 나 자신을 지울 수 있는 무기질적 느낌 때문에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 로망 중에 하나가 증발해버리는 거예요. 여행을 가거나 해외에 나가면 항상 이대로 휙 사라져 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죠. 기차 타면 창밖 풍경을 보면서 ‘저기 주유소에서 일하고, 저 집 정도에 살면서 새로운 인물 6호로 살아가는’ 상상을 해요. 내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주는 익명의 어떤 공간. 그래서 사람들이 공항이나 기차 플랫폼을 좋아하는 거겠죠.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낯선 걸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머리가 돌아가니까.
호텔을 소재로 5편의 이야기를 엮은 단편 소설집 〈호텔 이야기〉. 2022년 출간.
여행지에서 묵을 호텔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사사롭게는 침구류에 호텔 이름을 수놓거나 프린트한 곳은 무조건 제외. 에어비앤비도 안 가요. 에어비앤비라기보다 개인이 하는 숙소. 주인의 개성이 너무 강한 곳이나 콘셉트를 너무 강조한 방은 좋아하지 않아요. 무기질적이고 무채색인 곳, 나무 소재를 많이 쓴 곳을 좋아하고요. 한 도시에 길게 머물게 되면 숙소를 한두 번 바꾸는데, 적소에 숙소를 잡은 다음 그 동네에서 노는 걸 선호해요. 명소를 찾아 다니면서 아침에 호텔을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아요. 도보로 공원, 작은 가게, 서점, 카페 등을 다닐 수 있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숙소 위치가 중요하죠.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가급적 관광객 적었으면 좋겠고. 호텔에 가면, 프론트나 벨 데스크에 계신 분들하고 얘기를 많이 해요. 저는 늘 야간 당직을 서는 사람들이 궁금하거든요. 호텔 벨 데스크에도 밤에는 주로 혼자 있잖아요. 〈호텔 이야기〉에 ‘야간근무’를 쓰게 된 것도 밤에 러닝하다 보면 광화문 앞의 어떤 호텔을 지나는데 1층 벨 데스크 직원이 밤에 혼자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 젊은 남자 분을 볼 때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아무 생각 안 하고 있겠지만요. 저는 그런 사람들하고 얘기 하는 게 재미있어요. 첫 직장이 호텔 홍보실의 홍보 담당이었는데, 호텔 내 요소 요소마다 모든 직군을 다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그렇게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어요.

여행 다닐 때 책을 가지고 가나요?
그럼요. 필수예요, 필수. 주로 일본어로 된 문고판 소설. 가볍기도 하고 일본어로 된 책을 꾸준히 읽으니까 그거 하나 갖고 가거나,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는 책을 챙겨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같은 예전 책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이방인으로 거주하던 곳을 여행자로 다시 갔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상대적으로 어렸을 때, 성인이 되기 전에 해외에 산 경우가 많은데요(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브라질, 포르투갈, 미국, 루마니아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실 저는 외국에 가도 이질감이나 이국 같은 느낌이 없어요. 거꾸로 얘기하면 민족적인 게 없는 거죠. 뿌리에 대한 게 딱히 없다고 할까. 어디를 가든지 고향,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없어요. 그게 좀 슬픈 일이긴 한데, 어디 갖다 두면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아요. 특별히 장소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매거진이 지속 가능한 여행을 테마로 하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단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뭐든지 아껴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안 사고 덜 쓰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건데, 서스테이너블한 여행이 어떤 거예요? 뭘 어떻게 해야 돼요? 거꾸로 여쭤보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환경 친화적인 것과 지역 사회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것. 커뮤니티 베이스의 소비라고 할 수 있겠죠. 

호텔에서 침구 교체 안 하고, 현지 제품을 소비하고… 그런 건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작가님의 개인 소유 차량도 없앴다고요?
네, 없어지면 필요가 없거든요. 차를 운전할 일이 별로 없는데 갖고 있는 게 의미 없는 것 같아서 팔아버렸어요.

여행지에서도 동네에서 현지인들이 가는 곳을 많이 찾아가고.
완전 그렇죠. 그런데 이거 너무 짜맞추는 거 아녜요? (웃음)

일본 도쿄를 가장 많이 다녀오셨죠?
안 세 봐서 정확히 몇 번이나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요코하마까지 포함하면 한 4년 살았고, 출장도 많이 갔겠고. 일본은 외국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저한테는.

그럼 갈 때마다 다 다른 동네, 다른 호텔에서 묵나요?
그럼요. 특별한 게 없으면 보통 긴자 쪽에 머물러요. 걸어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해서. 일단 신주쿠나 시부야 쪽은 많이 가지 않고요. 긴자에 머물면 지하철로 다 커버가 되거든요. JR을 탈 필요가 없으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답게 그의 작품에 나온 여행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나요?
그것도 옛날에 한 번 했죠. 산문집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도 나와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 생활 초기에 다녔던 쇼난 해변의 밥집부터 작가가 어릴 때 다니던 고베의 동네 도서관, 신주쿠에 있는 더그(DUG,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재즈 바)까지 한 바퀴 돌았죠. 짬 나면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온 전기탕도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로서 그의 행적은 꼼꼼하게 좇으며 기록한 책. 2015년 출간.
왜 찾아가는 거예요?
재밌으니까. 제 책 중에 일본어로 처음 출간된 게 무라카미 하루키 평전처럼 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에요. 그후에 〈다정한 구원〉 〈호텔 이야기〉의 일본어판 나오고, *〈가만히 부르는 이름〉 〈다 하지 못한 말〉이 나올 예정이고요.
* 각각 2019년과 2024년에 출간된 두 번째, 네 번째 장편 소설.

여행 잡지에서 인터뷰를 요청드린 건데 어떤 질문을 예상했나요?

여행지에서 집필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소재를 찾으러 갔는지, 그런 걸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고, 여행하는 스타일이나 여행 에세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나 싶었죠. 제가 딱히 여행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좋아하지도 않아요. 저는 여행하는 것보다 낯선 데 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 도시 강연도 많이 다니거든요. 아주 작은 소도시도 많이 가고요. 그런 소도시의 역 앞 모텔 같은 데서 머무는 것도 별로 꺼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숙소를 고르는 저만의 기준이 있을지언정 꼭 고급스럽고 쾌적한 걸 따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낯선 공간에서의 낯선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신가봐요.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대체로 먹을 거에 별로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서는 먹는 건 에너지원일 뿐이죠. 먹는 게 인생의 쾌락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너무 중요한 쾌락이 되면 오히려 인생이 건조하지 않을까요. 인생에 제일 큰 낙이 맛있 는걸 먹는 거라면, 저는 슬플 것 같아요.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럼 가장 관심 있는 건 무엇이죠?
사람이죠, 사람 자체. 사람의 감정이나 사람 간의 관계, 그런 거요.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은퇴를 하게 될 때,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주제는 어떤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셨나요.
예전에는 막연히 마지막 책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와 같은 투병 에세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절실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쓰는 것은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생인 외동딸과 부쩍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는 요즈음, 이 아이에게 그 책은 아픔과 상처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쓰는 책에는 딸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글로 잘 담고 싶어요. 제가 나중에 세상을 떠나도 엄마가 그리우면 늘 곁에 가까이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 신경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가 폐암으로 죽기 전까지 2년간의 여생을 글로 남긴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