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pace Connecting Tradition and the Present
함창 명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 명주정원

경북 상주 함창은 과거 최대 명주 생산지였다. 상주 함창읍에 자리한 명주정원은 전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로컬 브랜드 아워시선이 이 지역 명주 생산의 역사를 기리며 운영하는 곳. 도시에서 지내다 고향 상주로 내려온 명주정원 운영자는 전통이 지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힙한 일상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콘크리트 공장과 찜질방을 거쳐 함창 명주를 알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명주정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명주정원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상주 함창읍의 역사를 반영한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상주와 문경 지역에 시멘트 산업이 번성했던 1960~70년대에는 대한콘크리트 공장이었고 2000년대 초에는 숯가마 찜질방이 들어섰던 장소거든요. 찜질방 폐업 후 10여 년간 방치되던 것을 가족과 친구들과 2년간 직접 리모델링했어요. 지금은 1000년 역사의 함창명주를 소개하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상주에 터를 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함창이 제 고향이에요. 어릴 적엔 너무 조용한 동네라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학업과 일 때문에 서울과 호주 등 여러 도시를 경험하다 보니 오히려 이곳의 정적인 매력, 여유로운 삶의 밀도 같은 것이 다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2019년 경상북도에서 시행한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1기’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고, 그 계기로 고향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명주정원을 오픈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도 궁금해요.

호주에서 외식경영(Hospitality Management)을 전공했어요. 학교를 다니며 공간 구성, 운영 관리, 식음료 기획, 고객 응대 등 전반적인 경영 감각을 익혔죠. 졸업 후에는 현지에서 셰프로 일했어요. 브런치 카페와 레스토랑 키친에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매장 운영 경험도 쌓았죠. 그때의 경험이 명주정원을 운영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밑거름이 됐어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좋은 메뉴를 제공하는 것 못지 않게 어떤 리듬과 감각을 느끼도록 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호주에서의 삶이 명주정원에 영감을 주기도 했나요? 
호주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과 공간을 향유하는 태도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죠. 거창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이 오래 사랑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호주와 상주는 어떤 면에서 참 닮아 있어요. 물질적 여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를 챙기는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운전할 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넓은 들판도 비슷하거든요. 명주정원에도 그처럼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담고 싶었어요. 전통을 억지로 강조하거나 무겁게 풀기보다 은은하게 스며들기를 바란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명주정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균형이요. 커피, 공간, 전통, 지역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미세하게 조율하고 있어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또 하나는 속도인데요, 빠르게 변화하기보다 천천히 스며들기를 바라죠. 이곳을 찾은 이들이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리거나,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다가 뜻밖에 명주라는 전통 소재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이 생기고 난 후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이 장소를 왜 이렇게 꾸몄지?”라며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한때는 찜질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동네 어르신들도 즐겨 찾으시고, 명주 소품에 관심을 갖는 젊은 분들도 점점 늘고 있는 게 눈에 보여요.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 손님도 늘었고요. 근래 들어서는 오히려 동네 어르신들이 찜질방과 시멘트 공장을 추억하면서 지인분들을 많이 데리고 오시기도 하고요. 본인의 추억을 통해 공간을 소개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보람을 느껴요. 최근 명주 쇼룸을 만들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우리 어릴 땐 이런 거 입고 다녔지.”라며 명주에 얽힌 옛 추억이 담긴 대화를 나누세요. 그런 대화를 들으며 이 공간이 정말 살아 있는 공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이 지역과 연결되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요.
 
명주정원의 카페 메뉴 중 지금 이 계절에 어울리는 추천 메뉴가 있을까요?  
상주의 제철 과일인 샤인머스캣을 활용해 올 여름 출시한 시그니처 음료 3종을 추천할게요. 지역 농가에서 직접 구한 샤인머스캣으로 만든 청을 활용해 개발한 음료예요. 녹차 베이스의 썬샤인 그린티, 샤인머스캣에 복숭아를 더한 썬샤인 피치에이드, 요거트를 곁들인 썬샤인 요거트 스무디 등 메뉴마다 다른 재료를 더해 각기 다른 매력을 살렸죠.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적극 활용해 로컬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어요. 

명주정원을 통해 함창명주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함창명주를 알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명주정원을 거점으로 지역 자산인 함창명주를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리는 리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함창명주는 오랜 전통을 가진 직물이지만 지금은 그 존재가 많이 잊혔거든요. 전시, 퍼포먼스, 공연 등 다양한 예술적 접근을 통해 명주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함창명주 리브랜딩 프로젝트’의 큰 줄기예요. 올해부터는 작가들과 협업해 명주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패션 아이템, 생활 소품, 공간 텍스타일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를 통해 명주의 일상적인 쓰임을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명주를 전통이 아닌 트렌디한 소재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명주정원이 그러한 변화를 이끄는 실험실이자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상주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나요?
경천섬 부근의 경천서림이요. 명주정원 운영팀이 함께 리모델링해서 만든 한옥형 북카페예요. 원래는 폐업한 한정식 식당 자리였는데, 서점 겸 카페로 새롭게 재탄생시켰죠. 창 너머로 경천섬 풍경이 바라보이고, 해 질 무렵이면 노을이 정말 멋지게 펼쳐져요. 무엇보다 한적하게 책을 읽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 개인적으로도 즐겨 찾는 장소입니다. 경천서림 근처에 상주 주막이라는 식당도 추천해요. 전통 한식 스타일을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낸 식당이에요. 여름철에는 바로 옆 낙단보 수상레저센터에서 카약이나 패들보드 같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어서 느긋한 여행부터 액티브한 여행까지 모두 경험하기에 좋죠.

평소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떤 곳인지, 여행 스타일은 어떤지 궁금해요. 
인파가 몰리는 관광지보다는 그 지역만의 결이 드러나는 동네를 좋아해요. 오래된 책방과 찻집, 작은 시장이 주는 분위기와 장면을 좋아하거든요. 여행지에서 만난 공간과 사람들, 그곳의 냄새까지 기억에 남는 여행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걷는 여행을 선호하고요. 일정이 꽉 찬 여행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는 편이 제겐 더 매력적이거든요.
 
도시를 벗어날 결심을 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로컬은 로망이 아니라 현실이에요. 도시에서 소비자로 살았다면, 로컬에서는 창작자로 살아야 하거든요. 그만큼 책임도 따르지만 동시에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싶거나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다면, 지방 도시만큼 좋은 무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 도시와는 다른 속도에 적응하고 견뎌낼 수 있는 끈기와 유연함은 꼭 필요하죠. 그럴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봐도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어떻게 되나요?
명주를 소재로 한 굿즈, 전시, 계절 프로그램의 확장을 통해 명주정원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는 게 목표예요. 나아가 <함창명주1481>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 팝업 전시나 로컬 브랜드 쇼케이스를 해보고 싶어요. <함창명주1481>은 1481년 함창 명주가 최초로 언급된 문헌의 기록을 참고해 만든 지역 브랜드예요. 전통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즐길 수 있는 이 시대의 자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명주정원을 통해 그런 생각이 잘 전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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