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세월을 가진 대한목장의 내외부 전경

All We Imagine as Journey
우리가 여행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제주 대한목장

농부가 되고자 제주에 정착한 한 청년이 있다. 유튜브 채널 ‘이십삼세 김상진’을 운영하는 김상진 씨의 이야기다. 최근 그는 70년간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은 채 말만 오가던 초원의 일부를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카페와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메일로 대한목장에서 여행자가 어떤 시간을 누리길 바라는지 묻자 자세한 *답변을 보내왔다.

  • 인터뷰어 박진명
  • 인터뷰이 대한목장 팀
  •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목장 팀이 공통으로 답했으며, 공간 브랜딩을 맡은 김상진 씨가 말한 내용은 구분해 표기했다.
먼저, 대한목장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약 70년 전에 생긴 경주마 전용 목장이에요. 교배, 위탁 관리, 경마 훈련 등 말과 관련된 다양한 일이 이루어지죠. 목장 주위로 흐르는 강을 경계로 외부와 단절되었던 30만 평의 부지 중 2만 평을 지난 4월부터 대중에 공개했어요. 창고 건물은 카페로 변신했고, 일부 목초지는 스냅 촬영, 말 산책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개방했습니다.

어떻게 대한목장과 인연이 닿았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세 명은 각기 다른 인연으로 이곳에 모였어요. 캠핑카 차박지를 찾던 렌터카 회사 이옥희 이사님이 먼저 지인에게 이곳을 소개받았고, 이후 감귤 농사를 지으러 제주에 온 (김)상진과 여행 중이던 (문)정원이 합류하게 됐죠. 역사와 자연을 두루 품은 매력적인 곳이라 대기업의 협업 제안도 많았다는 후문이에요.
상진 님은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지으며 노마드웨이브(구 제작소)라는 여행사도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여행사를 차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
상진 보통 사람들이 여행을 예쁜 자연 환경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힐링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하더라고요. 저한테 여행은 그 반대거든요. 일상에선 느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얻는 피로감을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여행인 것 같아요. 고행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꼰대 같은(?!) 이야기를 더하자면, 요즘 사람들은 힘든 여행을 기피하는 것 같아요. 배낭 하나로 전국을 누비는 여행자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워 여행사를 시작하게 됐죠.

‘그저 걷기’라는 국토종주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상진
대부분 ‘시청’만 할뿐 ‘견문’하지 않는 듯합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죠.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손쉽게 건너 뛰어요. 자동차와 같은 편리한 이동수단이 있으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걷기를 선택하면 목적지에 닿는 과정을 강제로라도 몸소 체험할 수 있죠. 그런 과정을 통해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비효율을 추구해야만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대한목장의 너른 목초지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와, 나는 대자연 속 그저 하나의 작은 생명체에 불과하구나’ 하는 탄식을 내뱉게 되더라고요. 높은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지나면 초원과 대나무 숲이 차례로 펼쳐지는데요, 그 웅장하고 장대한 풍경에 압도 당했어요.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탁 트여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고요. 말 그대로 자연 다큐멘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죠. 대한목장은 지도상으로 봐도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면적을 자랑해요.
이곳을 카페와 체험 공간으로 꾸민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다른 여행지에선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을 하며 제주의 자연을 더욱 가까이 느끼기를 바랐죠. 많은 사람이 드넓은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도록 구성했어요. 남녀노소는 물론, 반려동물도 함께 이용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대한목장의 공간 브랜딩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상진 아름다움에 집착한 것 같아요.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인데, ‘아름’은 옛말로 ‘나’를 뜻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처음 브랜딩을 시작할 때 SNS 감성을 흉내내려 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예쁜 가구와 조명을 사고 포토존도 깔끔하게 만들어 놓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건 대한목장의 아름다움이 아니더라고요. 목장 창고에 묵혀 있던 오브제와 의자를 꺼내 닦고, 외부 공간도 손님이 이용하기 편하게 정비만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어요. ‘여기는 원래 완성된 공간이었구나. 우린 그저 이곳의 장점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만 해주면 되겠구나.’라고요. 제가 발견한 이곳의 아름다움을 과하지 않게 설득시키는 데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 채널 ‘이십삼세 김상진’에서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를 개조해 조금씩 변화시키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곧 제주에도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한다고 들었는데, 상진 님에게 숙소 운영이란?
상진 스무 살 때 춘천에서 ‘상진여행집’이라는 이름의 도네이션 하우스를 오픈했어요. 정해진 가격 없이 원하는 만큼 돈을 내고 머무는 방식으로 운영한 숙소였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여행을 많이 하면서 너무 비싸서 혹은 미성년자라서 숙소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여러 번 겪었거든요. 누구나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여행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게 됐죠.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면?
상진 열여덟 살 여름 방학에 떠난 무전여행! 5박 6일 동안 해남에서 부산까지 열여섯 번의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했어요. 비상금으로 3,000원만 들고 갔는데 여행이 끝나고 나니 제 주머니에 길에서 만난 분들이 용돈으로 쥐어준 4만 원이 남아 있더라고요.

익숙한 장소를 떠나 낯선 지역에 머무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여행자와 주민, 그 경계에서 사는 삶은 어떤지 궁금해요.
상진 저는 적응력이 빨라 새로운 곳에 살기 시작하면 바로 그 동네 주민이 돼요. 그래서 경계인이었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새로운 곳에 가도 별로 설레지 않는다는 것? 모든 공간이 원래 살던 곳처럼 느껴지거든요.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상진 현재 계획은 제주도에 정착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따로 있어요. 많은 청년이 호기심을 해결하고 각자의 꿈을 펼치는 청년마을을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청년마을을 실현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다음 목적지가 될 것 같네요.

대한목장에서 여행자가 경험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나무 숲 안쪽에 설치한 해먹을 꼭 이용해보세요. 바람에 살랑거리는 대나무잎 소리를 들으며 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비추는 해먹에 누워 있으면 몸과 마음을 치유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말과 함께 산책하고 시간을 보내는 ‘홀스테라피’도 색다른 경험이라 꼭 해보길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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